올림픽 메달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항상 "이 선수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인데, 유승은 선수는 특히 그랬다. 처음엔 그냥 "오, 대단하다" 했는데 조금만 파고들었더니 이게 단순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는 걸 금방 알게 됐다. 솔직히 읽다가 몇 번 멈췄다. 가슴이 뭉클해서.

한국 설상 종목 역사를 바꾼 18살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빅에어. 유승은 선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것도 한국 설상 종목 최초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빅에어라는 종목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거대한 점프대에서 날아올라 공중에서 트릭을 구사하고 착지하는 종목이다. 높이도 높이지만 난이도 높은 회전과 그랩 동작을 얼마나 깔끔하게 소화하느냐가 점수를 가른다. 쉽게 말해서 공중에서 몸을 비틀고 돌리는데, 착지까지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수하면 그냥 넘어지는 게 아니라 크게 다친다. 위험도가 상당한 종목이다.
그 종목에서 18살 고등학생이 올림픽 메달을 땄다. 용인 성복고 재학 중이라니, 솔직히 처음엔 실감이 안 났다. 나 18살 때 뭐 했나 생각해보니까… 그냥 학교 다녔지. 근데 이 선수는 올림픽 역사를 새로 쓰고 있었다.
50만원짜리 보드로 세계 무대에 섰다는 것
이 부분에서 진짜 할 말을 잃었다.
유승은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서 탄 스노보드 가격이 50만원이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수백만원짜리 장비를 쓰는 무대에서. 근데 더 충격적인 건 장비 얘기가 아니었다.
국내에 빅에어 전용 훈련 시설이 없다. 그래서 일본까지 건너가서 훈련을 한다. 그렇게 드는 연간 훈련비가 1억원이 넘는다. 국가대표 지원이 넉넉하지 않은 설상 종목 특성상, 그 돈 대부분을 어머니가 대출로 감당해왔다.
1억. 일 년에. 대출로.
이 숫자를 보고 한동안 화면을 그냥 바라봤다. 딸의 꿈을 위해서 빚을 지는 부모와, 그 무게를 알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은 딸. 근데 그렇다고 이게 마냥 "부모님 덕분에 성공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한국 스노보드 인프라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겹쳐 보여서.
2024년, 뼈가 두 번 부러졌다
한 해에 골절을 두 번 당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얘기인데, 두 번째 부상 과정이 특히 마음에 걸렸다.
2024년 스위스 대회 중, 갭 착지에서 사고가 났다. 발목 뼈와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이었다. 근데 현지에서 엑스레이도 제대로 못 찍은 채로 10시간짜리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10시간 동안 그 상태로.

공항에서 어머니가 딸을 마중 나갔을 때, 유승은 선수가 걸어 나왔다고 한다. 그걸 보고 어머니는 "큰 부상이 아닌 줄 알았다"고, 나중에 진단 결과를 듣고 나서 오열했다고 한다.
이 장면이 자꾸 머릿속에 그려진다. 걸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걸어 나온 건지, 아니면 그냥 걸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지. 어머니를 걱정시키기 싫었던 건지. 뭐라도 하나라도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떤 이유든 간에 18살짜리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순간이었다.
같은 해 우측 쇄골 골절도 있었다. 2024년 한 해에만 두 번의 골절을 경험하고, 그래도 올림픽에 나가서 메달을 땄다.
23년 동안 스노보드 옆에 있어준 스님
달마배라는 대회가 있다. 봉선사 주지 호산 스님이 주최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불교 후원 스노보드 대회인데, 호산 스님은 무려 23년째 스노보드 유망주들을 후원해오고 있다. '스노보드계 대부'라고 불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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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올림픽에서 유승은 선수(동메달)와 함께 스노보드 평행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딴 김상겸 선수도 호산 스님과 인연이 깊다. 두 선수 모두에게 정신적 지주 같은 분이라고 하는데, 호산 스님이 이번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남긴 말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밤잠 못 자고 참선도 땡땡이쳤다."
스님이 참선을 땡땡이쳤다는 표현이 이렇게 따뜻하게 들릴 줄 몰랐다. 23년 동안 후원하며 지켜봐온 아이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따는 걸 보면서 얼마나 설레고 긴장됐을까. 종교인이고 스님이고 다 떠나서, 그냥 오래된 팬이자 응원자로서의 모습이 느껴져서 괜히 뭉클했다.
"올림픽보다 더 긴장됐다"고 수줍게 말한 이유
TV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유승은 선수가 출연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더 알려졌다. 실시간 검색어 1위까지 올랐을 정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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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유승은 선수는 "올림픽보다 전참시가 더 긴장된다"고 수줍게 말했다고 한다. 처음엔 웃긴 말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올림픽은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자리지만, 방송은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자리니까. 운동 잘하는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더 떨 수도 있지.
근데 그보다 더 와닿은 건 따로 있었다. 방송에서 어머니의 빚 이야기가 나왔고, 유승은 선수가 조용히 말했다.
"포상금 1억 전부 어머니께 드리겠다."
18살이 이런 말을 할 때의 무게감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근데 이 말 한마디에서 그동안 두 사람이 함께 버텨온 시간이 느껴졌다. 감사하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담은 문장 같았다.
18살, 이제 시작이라는 말이 진심으로 느껴지는 선수

보통 "이제 시작"이라는 말은 그냥 관용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근데 유승은 선수한테는 진짜 그 말이 맞다. 18살이고, 한국 설상 최초 여성 메달리스트가 됐고, 아직 몸도 더 좋아질 수 있고, 기술도 더 다듬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바라는 건, 이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됐으면 하는 거다. 국내에 제대로 된 빅에어 시설이 생겨서, 어머니가 더 이상 대출 걱정 안 해도 되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 메달을 따야 지원이 늘어나는 구조가 아니라,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일찍부터 제대로 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좀 더 큰 이야기니까 여기서 줄이고.
어쨌든, 유승은 선수. 진짜 고생 많았고, 정말 대단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여러분은 이번 올림픽에서 유승은 선수 경기 보셨나요? 혹시 이 선수를 알게 된 계기가 따로 있다면 댓글로 얘기해주세요. 저처럼 나중에 뒤늦게 찾아보다가 마음이 뭉클해진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요. 😊



